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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스크랩] Red River Valley (홍하의 골짜기)



        ◎ Red River Valley (홍하의 골짜기) ◎ 코니 프란시스 (Connie Francis) 가수 출생-1938년 12월 12일, 미국 | 호랑이띠, 사수자리 데뷔-1955년 싱글 앨범 'Freddy.



        Red River Valley (미국민요 홍하의 골짜기) Connie Francis From this valley they say you are going 당신이 이 계곡마을을 떠난다고 그들이 말하네요 We will miss your blue eyes and sweet smile 우린 당신의 푸른 눈과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워할 겁니다 For they say you are taking the sunshine 당신이 햇빛을 가져간다고 그들이 말합니다 That has brightened our path for a while 그동안 우리의 길을 밝게 비추었던 그 햇빛을요 Many hearts will be sad and so lonely 많은 마음들이 슬프고도 외로워질 겁니다 Many hearts will be sad and so blue 많은 마음들이 슬프고도 우울해질 겁니다 All the roses they bloom in this valley 이 계곡마을에서 만개한 모든 장미들도 Will be sad and missing you too 또한 슬퍼하며 당신을 그리워할 겁니다 Won't you think of the valley you're leaving 당신이 떠나는 이 계곡마을을 생각해보았나요 Oh how lonesome the valley will be 오 계곡마을이 얼마나 쓸쓸한 곳이 될는지요 Oh think of the kind heart that you're breaking 오 당신이 부숴버릴 친절한 마음을 생각하세요 And the grief that you're causing me 그리고 당신으로 인해 내가 받을 큰 슬픔을 (생각하세요)



        캐나다 마니토바 주의 레드 리버 계곡에서 처음 유행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 알려진 것은 1880년경이다. 이 노래는 1896년 뉴욕에서 "In the Bright Mohawk Valley" (작가 James Kerrigan)란 명칭으로 인쇄되어 나왔다. 1925년에는 텍사스 카우보이 가수 Carl Sprague가 "카우보이 러브 송"이란 이름으로 레코드 취입을 하여 대유행. 이렇게 제목이 바뀌면서 가사까지 달라졌다. 아무래도 이 노래는 원작자가 분명치 않으므로 일단 캐나다 민요곡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계곡(valley)"은 우리 한국인의 정서로 보면 거의 "고향"과 같은 의미를 갖는, 정겨운 단어이다. 그래서 노래 제목도 "Bright Sherman Valley", "Bright Laurel Valley", "In the Bright Mohawk Valley", "Bright Little Valley" 등, 자기 고향에 맞게 멋대로 바꾸는 것이었다. 1965년 코니 프란시스의 애타는 보이스로 히트했으며 당시 국내 팬들의 마음을 흠씬 사로잡았다.



        홍하의 골짜기에는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루크라는 정의로운 카우보이가 있었답니다. 루크에겐 정말 미치도록 사랑한 여자가 있었고. 그러나 그 여자는 서부 생활을 너무 힘들어해서 다시 루크를 남겨두고 동부로 가 버렸습니다. 루크는 점점 이상해지다 마침내 미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외로운 루크로 불렸습니다. 어느 날, 외로운 루크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가 사흘 뒤 사막에서 동료 카우보이들이 찾아냈을 때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며칠 뒤, 방울뱀 마을에 다 쓰러저가는 호텔 피아노가 '홍하의 골짜기' 를 혼자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변에 봉사를 많이 했던 외로운 루크의 유령이 밤마다 홍하의 골짜기를 연주하기 위해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카우보이들은 잠이 안오는 날 밤이면 홍하의 골짜기를 하모니카로 부르며 외로운 루크의 유령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까지 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바 있는 Connie Francis 그녀는 생기발랄한 미성의 소지자였으나 성대수술로 예전의 목소리를 완전잃어 버리고 성폭행까지 당하는 등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1965년 발표 앨범 Sings Folk Song Favorites에 수록된 Beautiful Brown Eyes는 차트진입과는 상관 없이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는 노래로 번안되어 가요로도 발표되어 인기를 모은 바 있는 곡 입니다.



        [Connie Francis(코니 프란시스)]는 50년대말에서 60년대초까지 가장 유명한 여성 보컬리스트였다. 그녀는 최고의 인기와 최악의 불행을 10년씩 나누어서 누리고 겪었던 가수이기도 하다. 한 해에 무려 9곡을 히트시켰던 가수가 [Connie Francis] 였으며 이 세상의 온갖 불행을 다 맞이했던 가수도 역시 [Connie Francis]였다. [Connie Francis]는 삶의 극과 극을 치달았던 가수이자 한 여인이었다. 1938년 12월 12일에 뉴 저지주에서 [Concetta Rosemarie Franconero] 라는 긴 본명으로 태어난 [Connie Francis]는 네 살때부터 아코디온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아코디언 연주실력으로 그녀는 그 당시 어린 가수와 연주자들의 최고의 등용문이었던 NBC TV 쇼 [Startime]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후 나중에 [Connie Francis]의 매니저가 되는 프로듀서 [George Scheck(조지 쉐크)]가 [Connie Francis]에게 아코디언을 그만두고 노래에 집중할 것을 권해 이후 4년동안 매주마다 [Startime]에 출연하여 노래를 하게 된다. [Startime]의 진행자 [Arthur Godfrey(아서 고드프리)]의 제안으로 [Concetta Rosemarie Franconero]라는 긴 본명에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 [Connie Francis]로 개명했다. [Connie Francis]가 17세이던 1955년에는 그녀의 재능을 지켜보던 MGM 레코드사 제안으로 레코딩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첫 출발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1955년 그녀의 첫 싱글 [Freddy]를 발표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 약 2년 동안에 걸쳐 발표한 9곡의 싱글 모두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의 첫 앨범 실패 가수들을 내치는 레코드 업계의 관행으로 볼 때에 이렇게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레코드사에서 그녀에게 지속적인 레코딩을 허락한것 역시 [Connie Francis]에게는 행운이었다. 이 때 [Connie Francis]의 아버지는 흘러간 명곡들을 리메이크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얼른 마음에 내키지않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이후부터 연속적인 히트곡을 쏟아놓게 되었다.



        그녀의 최초 히트곡은 [Who's Sorry Now] 였다. 이 곡은 [Bert Kalmar & Harry Ruby(베르트 칼마르 앤 해리 루비)]의 1923년 오리지널 히트곡으로 1946년 [Harry James(해리 제임스)]악단의 노래로 다시 히트하기도 했다. [Who's Sorry Now]의 히트는 그녀를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이 곡은 영국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고 미국에서는 넘버 4를 기록했다. 1958년에 [Dick Clark(딕 클락)]의 아메리칸 밴드스탠드 TV 쇼에 데뷔한 [Connie Francis]는 1958년 한 해에만 모두 다섯곡을 히트시키며 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 중에는 [Neil Sedaka(닐 세다카)]가 작곡해 준 [Stupid Cupid]가 차트 14위에 [My Happiness]가 2위의 히트를 기록했다. [My Happiness]는 원래 [John & Sandra Steel(존 & 샌드라 스틸)] 콤비의 1948년 오리지널 히트곡 이었다. 그녀의 전성기는 1958년부터 1962년까지였다. 이 기간에 그녀는 매년 평균 8곡의 차트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58년에 5곡을 히트시킨 [Connie Francis]는 1959년에도 7곡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 중 [Lipstick On Your Collar] 가 5위에 [Among My Souvenirs]가 7위에 [Trankie]가 차트 9위 히트를 기록했다. [Connie Francis]는 1960년에 무려 9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 [Everybody's Somebody's Fool]과 [My Heart Has A Mind Of It's Own] 두곡이 넘버원 히트를 기록하였고 [Mama]는 8위 히트를 기록했다. 1961년에도 그녀는 9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 [Where The Boys Are]가 4위에 [Together]가 6위에 [When The Boy In Your Arms(Is The Boy In Your Heart)]가 10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Connie Francis]는 1962년에는 6곡의 차트 히트곡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 [Don't Break The Heart That Loves You]가 넘버원 히트를 기록했고 그 뒤를 이어서 [Second Hand Love] 7위, [Vacation]이 9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그녀는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 탑 텐 히트곡만 알아보아도 지면이 다 차버릴 정도로 팬들의 사랑속에 푹 파묻혀 인기를 누린 가수였다.



        보통사람 같으면 견딜 수 없었던 고통을 그녀는 이겨냈다. 아마 불행과 싸워이길 수 있었던 것은 60년대의 영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70년대말 [Connie Francis]는 지난날 화려했던 시절을 발판삼아 새로운 앨범과 함께 재기하였다. 그리고 80년대초에 발표했던 앨범인 [There's Still A Few Good Love Songs Left In Me]에 이르기까지 히트 차트에 오르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한번 떠난 스타덤은 좀처럼 그녀의 곁으로 돌아올줄 몰랐다. 60년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10년 가까운 허무한 공백의 세월을 보낸뒤에 재기한 [Connie Francis]에게 변화무쌍한 팝 음악계는 스타덤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결국 1970년 이후 [Connie Francis]의 노래는 차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제 [Connie Francis]는 60년대 팝 음악계의 전설로서 어제의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의 노래는 오늘도, 앞으로도 우리의 애청곡으로 들려지고 불려질 것이다

출처 :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글쓴이 : 신제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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