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는 포르투갈의 항구도시 리스본에서 탄생하였고 노예로 끌려간, 서 아프리카 흑인들의 음악이
브라질로 건너간뒤 다시 포르투갈로 역류하여 아프리카적이며, 브라질적이고, 포르투갈적인
정서가 혼합하여 탄생한 음악입니다.
파두에는 사우다지 (saudade) 란 정서가 담겨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한, 흑인들의 부르스와 일맥
상통하는 정서라고 할 수 있지요. 포루투갈은 바다에 길게 뻗어 있는 나라로서,
일찍이 무업 및 전쟁을 위해 미지의 바다의 부름을 받고 나간 수많은 남자들을 바라보며
항구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뿌린 눈물과 탄식으로 암울한
그림자의 정서를 깊이 간직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한 운명에 대한 사우다지의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 파두라는 음악이기에 참으로 구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파두의 여왕으로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Amalia Rogrigues)를 들 수 있는데 그녀를 또한
"파두의 대사" "파두에 세계시민권을 부여한 위대한 파두 가수" 라고도 말 할 수 있지요.
그녀는 1920년 7월생이며, 에디뜨 삐아프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살았습니다. 낮에는 행상
밤에는 선술 집에서 노래를 하며 지내던 그녀는 후에 어느 카바레의 지배인에 의해 가수로서의
첫발을 디딜 수 있었고 후에 1954년에 그녀의 명성은 비로소 세계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검은 숄로 몸을 감싸고 깊은 감정을 자아내며 부르는 그녀의 검은 돛배 (Barco Negro)는
세계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6개의 현을 가진 포르투갈의 기타인
'기따라(Guitarra)' 에 맞춰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목청껏 끌어올리듯 부르는 독특한 창법과
그 가운데 우러나오는 사우다지의 정서가 파두를 이루는 삼대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아말리아에게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파두를 '리스본 파두 (Lisbon fado)'라고 한다면 이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꼬잉브라 파두 (Coimbra fado)' 가 있습니다. 꼬잉브라 파두는 꼬잉브라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한 남성들 전용의 파두로서 중세 포르투갈의 발라드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후에 60년대에는 아말리아의 남편이자 둘쓰 뽄티쉬 (Dulce Pontes)의 아버지인 포르투갈
대표적인 기타리스트 싱어 주제 아폰수 (Jose Afonso)에 의해 포르투갈 독재정부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 서는 노래들의 본산지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에 올수록 파두는 본래의 고유의 예술성이 희석되고 팝과 같은 새로운 음악적 흐름들과의
퓨전을 통해 변화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가수로 미지아(Misia), 둘스 뽄티쉬(Dulce Pontes), 카치아 게헤이루(Ktia Guerreiro),
크리스티나 브랑코 (Cristina Branco) 등 수많은 가수들이 있어 여기에 다 언급할 수 없습니다.